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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오디션 `슈퍼스타 K`

에누리쇼핑 2011. 4. 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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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진상 프로그램이 나한테 떨어졌다. 엠넷에서 근 3년간 기획했다 엎어졌다를 반복했던 대국민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게다가 목표 시청률은 3주 연속2%라니.. 케이블에서 2%란숫자는 연말시상식에 올해 활약했던 톱가수 전부가 나와도 나올까 말까 한 시청률 아닌가? 결국 프로그램 봄 개편회의에서 내가 이 진상 밉상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출해야 한다는 발표가 나자 동료 PD들은 (혀만 끌끌 안찼지) 일제히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10개월이 흘러 10월9일 진상 오디션 <슈퍼스타K>가 드디어 종영을 했다. 시청률 8.47%. 동시간에 함께 방송했던 KM 시청률까지 합치면 거의 9%에 육박했고, 1년 후 다시 시작된 시즌2는 무려 18.1%를 기록했다. 케이블 최초로 순간 시청률이 21%가 넘었다.(공중파 시청률로 환산하면 곱하기 3이라는데 그럼 63%?) PD가 시청률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선배들이 누누이 주의를 주었건만 나 또한 <슈퍼스타K>가 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 어리둥절… 케이블 오디션에 퍼부어주는 사람들의 관심이 이상하리만치 실감이 나질 않는다.

사실 <슈퍼스타K>의 준비과정은 실제감이 충만할 만큼 비장했다. 지금은 공중파에서 <슈퍼스타K>와 비슷한 가요오디션도 있고 실력있는 가수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만들어질 정도로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동안 음악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안나오는 천덕꾸러기중에 천덕꾸러기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음악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 대중의 무관심 때문으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꺼림칙했다.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음악을 이슈 삼아 이야기하고 가수의 새로운 음반에 열광하던 10년 전 그 시절이 더 이상 향수에 그치지 않도록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자는 것이 <슈퍼스타K>탄생의 시작점이었다. 대중이 돌아섰다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먼저 프로그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대중을 끌어줄 심사위원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일단 취지도 좋고 거대 프로젝트답게 음악을 후원해줄 스폰서도 어렵게 잡았기 때문에 최고의 심사위원만 있으면 프로그램의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하지만 <슈퍼스타K>가 진상 오디션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다. 맨 먼저 찾아간 이승철 씨나 이효리 씨는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에 확신이 안선다는 이유로 매니저들을 통해 고사의 뜻을 밝혔다.

미국의 메가 히트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의 해외 성공 사례를 공중파를 포함한 수많은 방송사가 한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벤치마킹 해 왔지만 어느 가수 오디션 하나 성공사례가 없었다. 게다가 전국을 돌아다니는 대국민 오디션이라 제작비만 어마어마하게 산출되는 코끼리 같은 프로그램이었고, (본래 <슈퍼스타K>란 타이틀이 정해지기 전 한동안 프로그램 제목으로 <맘.모.스(맘속 모두의 스타)>로 불렀던 게 슬쩍 창피해진다) 실패하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제일 좋은 안줏감 그 자체였다.

선례가 없는 천덕꾸러기 가수 오디션에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팔아 남을 비평하는 위치에 서고 싶을 가수가 어디 있을까? 이효리 씨를 설득하려고 <패밀리가 떴다>가 녹화되던 전남 고창을 내려가 그녀의 차에서 삼고초려하고, 방송 출연을 꺼리는 양현석 사장을 만나려고 합정동 YG사무실을 직접 찾아 다녔다. 결국 이승철 씨의 표현대로 재미없을 것 같은 오디션에 정말 서비스 정신으로 참여해준 심사위원들의 희생정신은 가히 슈바이처 수준! 그렇게 시작한 진상 아니.. 대국민 오디션 <슈퍼스타K>는 더없이 냉철하고 독창적이며 리얼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재작년 서인영의 카이스트로 리얼리티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터라, 비록 손대면 망한다는 가수 오디션이지만 어차피 사람 사는 얘기가 있는 리얼리티라고 한다면 소재만 음악일 뿐이지 같지 않을까 자기 최면을 걸어보며 구성을 짰다. 화이트 보드가 회의실 벽 4면으로 꽉 차도 모자라 창문에 2절지 종이 10여장이 덕지덕지 붙여져 갔다. 음악 리얼리티 프로그램 이외에도 장르불문하고 성공했다는 리얼리티를 분석하며, 5명의 작가와 5명의 피디가 기존에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식상한 단골메뉴들을 하나 둘 지워갔다.

 



그렇게 독한 준비기간을 마치고 4월3일 역사적인 1차 전화예선이 시작됐다. (그런데) 최상의 기획회의를 했다고 자부하던 첫날, 아뿔싸 문제가 생겼다. 전화예선 첫날 6천명이 지원을 한 것. 전국적으로 1만명이 지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기획했던 오디션이 하루 만에 6천명이 들어온 것이다. 결국 3개월 동안 713,503명의 사람들이 <슈퍼스타K>에 지원을 했고(시즌2의 지원자는 134만6402명, 시즌3는 현재 20일만에 80만을 넘기고 있다), 작가들이 소화하기로 한 합격자 전화안내는 결국 수십 명의 아르바이트 생들이 고용되어 맡게 되었다.

지역 8개 지역에서 치러졌던 2차 예선에선 폭주하는 참가자들 덕에 예정에도 없던 대관비가 추가로 몇 천만 원씩 책정되었다. 펄쩍 뛰며 좋아해야 할 상황이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이건 거의 재난수준이었다. 결국 안전진행요원이 부족해 예선 지역 대학교에 전화를 걸어 수십 명의 대학생 서포터즈가 무보수로 발벗고 나서 주었다. 스텝들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매번 5시간씩 걸리는 지방 오디션을 갈 때 마다 새벽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야 했고.. 식비도 아끼려고 주문 도시락 중에 가장 싸다는 H도시락도련님 세트를 8개 지역 분점에서 시켜먹었다. 인천, 제주를 시작으로 마지막 서울예선까지 지역별 도련님 세트를 다 먹고 나서 무슨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마냥 스텝들끼리 으스댔던 기억은 이젠 추억이 됐다.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슈퍼스타K가 되기 위해 모였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은 시각장애인도, 어릴 적 왕따로 놀림받았던 고등학교 중퇴 학생도, 노래하고 싶어서 클럽에서 일한다는 트랜스젠더도, 어릴적 부모의 이혼과 부도로 환풍기 수리공이 되었던 한 청년도, 어릴 적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가수의 꿈을 접었던 50대 가장도 지원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MC 김성주의 표현대로 이들 모두 유례없는 냉혹한 오디션에 고배를 마셔야 했고 결국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이 선택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비정한 탈락과정은 이상하게도 시청자와 참가자들의 분노 대신 눈물을 만들어 냈다.

<슈퍼스타K>는 절박한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이 실패하거나 좌절할수록 시청자의 눈시울을 붉히고, 그들이 힘을 더해 감동스러운 공연이 연출되었다. 광주의 같은 학원 출신이었던 박세미와 정슬기는 둘 중 한 명만 합격하는 라이벌 미션에서 둘 다 합격하는 것이 목표라며 경쟁 아닌 협력을 외쳤지만 결국 박세미만 TOP10에 선발되었다. 합격해서 미안하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박세미의 모습은 낯선 감동을 전했다. 시각장애인이라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김국환씨의 노래는 팀 미션곡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 심사위원 이효리를 울려버렸고 자신의 암울한 과거를 노래로 씻어내고 싶다는 김보경의 노래는 엄정화를 울렸다. 시청자들은 이미 출연자들 하나 하나의 사연에 감정이입이 됐고, 출연자들은 함께 공연을 준비하며 정이 들었다. 억대의 상금과 초호화 음반기회를 잡으려면 형제라도 총을 겨뤄야 하는 TV판<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떨어져도 억울함을 호소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축하하고, 합격자는 탈락자를 보며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슈퍼스타K>는 미국 리얼리티쇼의 비정함에 한국식 경쟁의 감수성을 더해 합격의 쾌감 대신 탈락의 눈물을 보여주었다. 살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지만, 나만 살기엔 다른 사람들의 사연도 너무나 아프다.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의 딜레마. <슈퍼스타K>가 초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따뜻한 비정함을 가진 리얼리티 쇼에서 우정이나 가족이나 겸손함을 나의 백 그라운드로 가지고 있는 한국의 현재가 반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8만원 세대라는 대한민국의 무한경쟁 속에서, 10대 아니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음반 기획사의 현실 속에서 더욱 절박하게 그들을 응원해 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응원이 <슈퍼스타K>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디션 장을 찾았지만 결국 떨어진 딸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수고했다라고 말해주는 부모님들의 무한한 사랑이 <슈퍼스타K>의 원동력이었다면 이상할까?

비록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일주일에 집에서 잠을 잔 적이 1~2일 밖에 없을 만큼 힘들고, 체중도 10kg나 빠져버렸지만 꿈을 잃지 않고 무언가 열정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을 봐 왔던 관람료라 생각하고 싶다.(지금은 다시 체중이 돌아와서 관람료를 고스라니 반납 받았다) 하나 같이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노력과 재능만으로 명성을 얻게 된 이들이, 편협하게 돌아가는 가요계의 현실을 깨줄 것만 같아 힘이 났던 약값이기도 했다. <슈퍼스타 K>는 때론 인정에 호소하고<인간극장>식의 편집 때문에 일부 진부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치열함 속에 가족애 같은 인간미는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정말 열정 하나로 뭐든 소화해 낸 이 무식하고 욕심 많은 도전자들이 시름시름 죽어가는 가요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면 좋겠다.

작년 <슈퍼스타K>가 공정사회의 키워드가 되면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가요를 눈이 아닌 귀로 받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제 <슈퍼스타K>와 수많은 가요 프로그램들이 더 이상 진상 프로그램이 아닌 상전 신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길 기대 해 본다. 엠넷은 올해도 <슈퍼스타K>시즌3를 기획하고 있다. 더욱 개성있고 다양한 음악들이 우리들의 갈증을 속 시원히 해갈해 주면 참 좋겠다.

이번에 삼성에서도 “슈퍼스타S”라는 사내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부디 음악으로 사우들과 한바탕 웃음과 행복을 나누는 멋진 시간이 되길 기원해 본다. 그.리.고 슈퍼스타S에서 본인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신 분들은 주저없이 오리지널 <슈퍼스타K>에도 꼭 지원해주시길…

Mnet 슈퍼스타K 김용범 PD





P 구글북닷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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